경호시대사
구한말 전기
고종 원년(1863) 고종 즉위. 삼군문(三軍門) 소속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및 번상기병, 금군, 호위청 등이 창덕궁 숙위 담당
고종 5년(1868) 병인양요 계기 삼군부(三軍府) 복설. 경복궁 숙위체제 기초골격 마련
고종 11년(1874) 무위소(武衛所) 창설(무위청과 훈련도감이 합쳐진 정예병력). 궁궐 숙위 총괄
고종 18년(1881) 무위소를 무위영(武衛營)으로 개칭해 훈련도감, 용호영, 호위청과 통합. 실질적인 금군의 임무 담당. 총융청(摠戎廳), 금위영, 어영청은 장어영(壯禦營)으로 통합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발생. 무위영, 장어영 폐지. 삼군부와 5군영 부활. 훈련도감을 용호영에 통합. 금위영, 어영청이 궁궐 숙위 임무 분담 실시. 5위 폐지. 호위청 폐지
고종21년(1884) 갑신정변 발생. 용호영이 금위영, 어영청, 총용청과 함께 친군 4영에 분할 이속되어 해산
고종22년(1885) 용호영 부활. 용호영, 총어영, 경리청 등을 모두 친군용호영(親軍龍虎營)으로 지칭. 호위청 복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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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소
1874년 설치. 궁궐수비를 담당한 왕의 친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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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영
1881년 훈련도감, 용호영, 호위청을 합쳐 설립. 무위소의 연장으로 왕궁을 지키는 근위군. 1882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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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군용호영
국왕 호위대인 용호영의 강화책으로 설립. 용호영, 총어영, 경리청을 합친 왕의 호위부대. 시험으로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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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갑오개혁 때부터 대한제국기까지 도성 경비와 궁궐 수비를 전담한 부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따라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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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
친위군과 진위군으로 양분하여 친위군은 경성에 주둔하며 왕성 수비를 담당. 대대급에서 연대편제로 개편하여 전투부대로 강화된 신식군대
구한말 후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 군무아문(軍務衙門) 산하 친위국(親衛局) 설치. 궁궐 내 군사 담당 용호영을 통위영(統衛營)으로 병합. 경무청에서 궁궐 안 순찰 실시(김홍집 주도 군국기무처 안)
고종 32년(1895) 경무청관제 반포. 친위국 폐지. 시위대(侍衛隊) 설치. 을미사변 계기 시위대 해체 후 훈련대로 편입. 육군편제강령 반포 (친위대(親衛隊) : 궁성 수위, 진위대(鎭衛隊) : 지역 방위)
고종 33년(1896) 아관파천. 내각 해산. 시위대를 러시아식 편제로 재편성
고종 34년(1897) 시위대 재창설(궐내숙위 전담). 호위군 설치. 시위2대대 편성. 호위군을 호위대로 개칭(직속부대 성격)
고종 38년(1901) 경위원(警衛院) 설치(황제 직속 경찰기구)
고종 42년(1905) 친위대 해산. 시위대 감축. 경위원을 황궁경위국(皇宮警衛局)으로 개편
순종 원년(1907) 정미7조약 체결. 대한제국군 해산. 황실경호부대로 시위2연대 2대대 존치. 이후 근위보병대 1개 대대 편성
순종 3년(1910) 경술국치. 궁내부 소속 황궁경위국을 경무통감부로 통합. 창덕궁경찰서 설치. 덕수궁 분서 설치. 한일합병 이후 근위보병대를 조선보병대로 격하 운용
1931년 조선보병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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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원
1901년 설치. 궁중 내 · 외곽 경비와 궁내 사법업무 담당. 궁내경찰로 출발 후 궁내부로 개편. 오늘날 경비경찰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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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경위국
1905년 경위원을 개편한 조직으로 궁궐 경비. 치안 담당 경찰기구. 1910년 경무통감부로 통합. 황궁경찰서(창덕궁경찰서) 설치. 창덕궁과 덕수궁 경호임무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