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시대사
조선 전기 (1392~1623)
태조 원년(1392) 고려 말 도총중외제군사부(都摠中外諸軍事府)에서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로 명칭 변경
태조 2년(1393) 삼군총제부(三軍摠制府)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변화. 중앙군의 중추적 기관으로 발전
태조 3년(1394) 10위(十衛)를 10사(十司)로 개편
태종 즉위(1401) 별시위(別侍衛) 신설. 성중애마 삼군부(三軍府)로 이속
태종 7년(1407) 궁중 숙위를 담당하는 내상직(內上直)을 개편해 내금위(內禁衛) 조직
태종 9년(1409) 내시위(內侍衛) 신설. 겸사복(兼司僕) 설치
태종 18년(1418) 태종이 세종에게 전위. 10사를 12사로 확대
태종~세종 중엽 갑사(甲士)가 금위병(禁衛兵)으로서 왕의 시위에 종사
세종 원년(1418) 충의위(忠義衛) 조직
세종 4년(1422) 태종 승하 후 12사를 10사로 변경
세종 6년(1424) 내시위를 내금위(內禁衛)에 병합
세종 27년(1445) 10사를 12사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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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친군위
조선 건국과 더불어 등장. 10위의 중앙군 중 하나로 왕실의 사병적 성격을 가지며 궁성의 시위와 왕의 시종업무를 수행하는 친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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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삼군부
태조 2년 의흥친군위의 후신으로 숙위담당 외에 군사 전반에 통제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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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사
태조 3년 10위를 개편한 조직. 궁궐의 시위와 한성의 순찰·경비업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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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태종~세종 중엽까지 근위병으로 왕의 호위 임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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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시위
고려 말 성중애마 폐지 후 신설된 특수군으로 시험에 의해 선발되어 왕의 시위 임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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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위
태종 7년 설치된 왕의 측근 호위군사조직으로 초기에는 무예를 갖춘 양반 출신으로 충당되다가 세종 5년부터 시험에 의해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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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위
태종 9년 내금위 · 별시위처럼 양반출신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 왕의 시위 임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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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복
조선시대 최대의 정예 기병 중심의 친위군. 세조 10년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었으며, 주로 국왕의 신변 보호와 왕궁 호위 및 친명 양성 임무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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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위
세종 원년 개국공신 등의 자손으로 편성되어 왕의 시위 담당
조선 후기
인조 원년(1623)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왕의 동의를 얻어 호위청(扈衛廳) 설치
인조 원년(1623) 경기의 속오군(束伍軍)을 정비. 독립된 군영으로 국왕호위의 병력인 어영군(御營軍) 발족. 유사시에만 궁성에 모이는 형식으로 근무
효종 3년(1652) 국왕의 친병인 금군(禁軍) 전부를 기병화
정조 원년(1777) 홍상범이 정조를 시해하려는 사건을 계기로 숙위소(宿衛所) 설치
정조 3년(1779) 숙위소 폐지
정조 초 호위청 4개청을 1개청으로 축소. 장용영(壯勇營)에 합속. 궁궐 숙위 임무를 장용영에 귀일
정조 9년(1785) 새로운 금위체제인 장용위(壯勇衛) 조직. 정조 6년(1782)부터 시작
정조 17년(1793) 장용위를 장용외영(壯勇外營)과 장용내영(壯勇內營)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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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청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들의 사병들로 편성. 궁중 호위를 위해 설치된 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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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군
인조원년 설립. 속오군과 정예병을 선발하여 75일씩 윤번. 왕의 시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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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군
효종 때 군사력 강화를 위해 수어청, 어영청의 뒤를 이어 설치된 왕의 친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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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위소
정조 즉위년에 친족을 몰아내고 자신의 정치세력을 구축한 궁궐 숙위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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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위
정조 6년 숙위소를 폐지하고 설치. 후에 장용외영과 장용내영으로 확대되어 장용내영은 정조 호위임무, 장용외영은 부왕 장조능의 호위임무 수행